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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부정공>금헌공휘규남(휴경)행장(錦軒公諱圭楠(休警)行狀)
금헌공휘규남행장(錦軒公諱圭楠行狀) 公의 諱는 休警이요. 初名은 圭楠이며 號는 구암. 玉川趙氏로서 고려조 광녹대부검교대장군 문화시중이신 諱 璋 上祖로부터 三世가 장상으로 거룩한 공훈을 떨치었고, 이어서 生의 諱 元吉. 號는 농은인데 포은, 목은, 도은, 야은과 더불어 오은이라 칭하였으며 벼슬은 문화시중으로 고려공양왕때 一等功臣으로 삼중대광 보국 옥천 부원군에 충헌의 시호를 봉하였으며 生의 諱瑜 고려말 전농부정으로 이조에서 한성부윤으로 누차에 걸쳐 불렀으나 충신은 불사이군이라며 절개를 지키고 응하지 않고 두문동으로 들어가 은둔하면서 호는 건곡이라 했다. 生 절민공 諱 숭문(崇文) 일찍이 무과에 급제하고 함길도 병마절도사 겸 경성 도호부사였으며 生 諱 哲山 증동몽교관 丙子화에 육신과 같이 父子 동시 순절한 충신의 후예 十二代孫 사면춘풍 趙鎭龍 號 담헌 현손인 公은 어렸을 때부터 재질이 영특하여 구촌선생의 후학으로 많은 학문을 이수하다 고창고보를 졸업하였다. 당시로서는 상급학교인 고창고보의 진학으로 신문명을 접하였으나 대대로 내려오는 관습과 自己主義思想사이에서 고민을 하다 상급학교의 진학을 원하는 주위의 많은 권유를 거절하고 高祖父님의 유덕을 이어받기 위해 五代가 세거해 왔던 고기로 돌아와 유산을 지키면서 전통적인 충효정신과 숭조의 정신 그리고 돈모와 덕의의 정신을 신조로 하여 실천궁행하였다. 公은 개화기 시·구문명의 혼돈속에 혼란스러워하는 주위사람들의 고통을 어루만지며 자신에게는 구문명을 지키는데 엄격했다. 공은 六十세에 발병하여 병원치료를 권하였으나 “나의 병은 치료로 나을 병이 아니요. 三月初에는 가야할 병”이라면서 약을 일절 접하지 아니하며 子女들의 애통함속에 당년 二月 二十九日 향년 六十五세로 별세하였다. 鄉里 사람들은 公의 평소 후덕함과 물욕이 없고 사심이 없이 살면서 傳統을 몸소 지켜온 公의 죽음을 눈물로 애석해 하였다. 公은 妣 승평박씨(一九○三년 壬寅 七月 十六日生) 배 밀양손씨(一九一九年 十二月 十七日生)사이에서 아들 昇勳과 사위 임석환, 사위 문성민, 사위 한희수, 사위 김순곤 등 一남 四녀를 두었다. 公의 묘소는 구산촌전 가장동 백호등 언덕 丙坐이다. 후덕한 人品임에도 전환기의 시대의 아픔으로 큰 포부를 펴지 못한 公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없음을 애석해하며 남아있는 기억과 전해내려오는 전언을 중심으로 從弟가 삼가 기록함. 從弟 圭詢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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